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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hole
Pinhole / 홍진훤

도망치다시피 시골을 떠나온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처음 도착한 곳이 서울 창신동이었다. 언덕길을 꾸역꾸역 오르던 기억과 좁은 골목길에서 리어카를 끌며 이사를 다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있다. 가을이면 동대문 앞으로 커다란 탱크와 장갑차의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때때로 코를 찌르는 매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 동네였다. 그 군인들의 행렬과 매캐한 뿌연 연기의 간극을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린 시절이었다.

다시 창신동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이곳은 높고 좁다. 하지만 이제 리어카 대신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연신 언덕을 오르내리고 키 작고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 대신 덩치 큰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를 메운다. 그리고 이제는 깎아 내린듯한 채석장 절단면의 역사와 이소선과 전태일이라는 역사의 동일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봉제공장의 지금과 동대문 의류상가의 현실따위에 나름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간과 공간의 단절 사이 나는 얼마나 변하지 않았고 또 얼마나 변했을까. 이소선과 전태일이 등장하는 기록사진에 내가 찍은 창신동 사진을 덧대어 본다. 우리는 얼마나 변하지 않았고 또 얼마나 변했을까. 평화시장의 평화는 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가까워진걸까. 이소선이 평생을 지켜내려 했던 전태일의 바늘구멍 사이로 우리는 무엇을 쌓고 무엇을 허물고 있는걸까. 창신동은 여전이 높고 좁으며 오늘도 가쁜 숨을 내쉬며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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